하나님의교회와 어머니하나님이라면.. 블로그의 존재이유는 전세계가 "어머니"의 사랑과 배려속에서 변화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어머니"와 천주교에서 말하는 "어머니"가 차이가 있기에 그 차이를 분명히 하려고 합니다.
독일의 헤르타(Hertha), 스칸디나비아의 디사(Disa), 중국의 싱무(Shingmoo), 인도의 인드라니(Indrani)와 데바키(Devaki), 이집트의 이시스(Isis)….전 세계에 퍼져있는 ‘아이를 안고 있는 여신상’들이다. 이들의 모습은 마치 천주교회의 ‘마리아가 아기 예수를 안고 있는 형상’을 조금씩 변형해 놓은 듯하다.
모자 숭배사상이 시작된 곳은 고대 바벨론이었다. 바벨론에는 ‘니므롯’이라는 강한 임금이 있었다. 그에게는 ‘세미라미스’라는 아내가 있었는데 남편의 힘에 의지해 큰 권력을 행사하고 있었다. 이후 세미라미스는 니므롯이 죽자 그가 태양신이 되었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그의 아들에게 ‘담무스’라는 이름을 붙이고 니므롯이 환생했다고 거짓말하여 모자를 숭배하도록 종용했다. 이 같은 이유로 인해 바벨론 유물 가운데서 ‘여신 세미라미스가 아들 담무스를 안고 있는 모습’을 한 형상물을 자주 볼 수 있는 것이다.
이후 바벨론 백성들이 전 세계로 흩어지면서 모자 숭배사상도 같이 가지고 갔다. 이와 관련해 한 저술가는 “이름이나 장소에 관계없이 그 여신은 바알(니므롯)의 부인인 하늘의 처녀 여왕인데 임신하지 않았지만 자녀를 가졌다”고 말했다. 이것이 그리스도께서 오시기 여러 세기 전부터, 전 세계에 모자 숭배사상이 퍼지게 된 이유다.
물론 마리아 숭배사상도 고대 바벨론의 여신 세미라미스의 변형된 모습이라 할 수 있다. 어째서 하나님을 섬기는 교회 안으로 모자 숭배사상이 들어오게 된 것일까.
마리아를 여신으로 보기 시작한 시기는, 4세기 초 콘스탄티누스 시대부터다. 여러 세기 동안 모자 숭배사상이 전해져 내려온 만큼 사람들은 이 사상에 크게 집착했다. 기독교로 개종한 사람들조차도 모자 숭배사상을 버릴 마음이 없을 정도였다. 이에 교회 지도자들은 ‘이 사상을 기독교 안으로 혼합시켜 마리아라는 이름으로 대체시켜 나간다면, 더 많은 개종자를 얻을 수 있으리라’고 판단했다. 이미 그들은 하나님의 진리에서 떠나 있었고, 예상대로 이교도 여신에게 경배했던 것이 마리아에게로 옮겨지게 됐다. 이로써 마리아 숭배사상이 자리잡게 된 것이다.
431년 에베소 회의에서 마리아를 하나님의 어머니로 채택한 이후, 마리아 숭배사상은 더욱 강화되었다. 그리고 1854년 교황 피우스 9세가 ‘마리아의 무죄 잉태설’을 선포하고 14년 후 바티칸회의를 통해 확정지었다. 이후, 마리아는 일생 동안 죄를 짓지 않았다는 교리가 생겨났다. 1950년 12월에는 ‘마리아 부활 승천설’이, 1962년 제2차 바티칸회의에서는 ‘마리아 종신 처녀설’이 선포됐다.
물론 성경에서 마리아 숭배사상에 대한 근거를 찾는 것은 무리다. 예수님도, 사도들도 마리아를 숭배의 대상으로 바라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예수님의 눈에도, 사도들의 눈에도 마리아는 뭇사람들과 동일한 피조물에 불과했다. 어떤 사람이 예수의 어머니와 형제들이 밖에 있다고 말했을 때, 예수님께서는 “누가 내 모친이며 내 동생들이냐”고 물으시고 제자들을 가리키며 “나의 모친과 나의 동생들을 보라! 누구든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들이 내 형제요 자매요 모친이니라”고 하셨다. 예수님께 마리아는 ‘하나님의 어머니’라고 칭할 만큼 특별한 권능을 가진 존재가 아니었다. 우리들과 동일한 구원해야 할 대상이었을 뿐이다.
“내 영혼이 주를 찬양하며 내 마음이 하나님 내 구주를 기뻐하였다(누가복음 1:46~47)”고 고백한 마리아는 우리와 같이 구원자를 애타게 기다리는 존재였을 뿐이다. 결코 생명수를 부어주는 ‘신부’가 될 수 없다.
[출처 : pasteve.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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